▲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조명평론가. ©한국건축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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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국민 한 분이 청와대가 운영하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긴 제목을 단 이 청원의 글에 지난 8월 28일 현재 2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의한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 ‘시무 7조’ 상소문은 지금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 그리고 유튜브에서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여기도 시무 7조 이야기, 저기도 시무 7조 이야기”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 또는 유튜브를 이용하는 국민이라면 한 번쯤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렇게 난리인가?” 하는 호기심 때문에라도 ‘시무 7조’를 읽어보지 않고는 견디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저 역시 그런 궁금증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시무 7조’를 찾아서 읽어본 평범한 국민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무 7조’가 ‘좋은 글’로 평가를 받는 이유
막상 읽어보고 나니 이 ‘시무 7조’에 대해서 많은 국내 유명 인사들이 왜 “참 잘 쓴 글이다!” 하고 칭찬하는가를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어떤 글이 ‘잘 쓴 글’이라는 평(評)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글에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잇어야 합니다. 그리고 논리 있게, 그리고 조리 있게 글을 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짓말이나 과장, 억지 같은 부분이 없어야 하지요. 여기에 적절한 비유와 유머를 가미해서 재미와 호기심을 갖도록 한다면 일단 ’좋은 글‘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진인(塵人) 조은산 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놓은 ’시무 7조‘는 많은 분들로부터 “좋은 글이다!”라며 호평을 받을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말해서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국내 유명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을 하고 지금은 유튜버로 변신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 전직 언론인께서 “대한민국 건국 이래 본 글 중 최고의 명문(名文)”이라고 극찬을 한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무 7조’는 ‘명문장’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의 시각에서 볼 때, 저는 “이 ‘시무 7조’라는 글이 과연 끝까지 ‘명문’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하기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아주 떨쳐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글이란 쓰는 것도 자유이지만 읽거나 읽지 않는 것도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무 7조’와 같이 “당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내용으로 쓴 글은 상대방이 그 글을 아예 읽어보지 않거나, 읽고 나서도 그 글에 담겨 있는 내용대로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 글을 쓴 사람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거나, 원한을 품거나, 글의 내용을 왜곡해서 글을 쓴 사람에게 ‘엉뚱한 죄’를 뒤집어씌우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시무 7조’ 같은 글을 썼다가 권력자나 어떤 정파의 원한을 사서 한 순간에 인생을 망치거나, 아예 목숨까지 잃는 비참한 일을 당한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글은 썼으되, 그 글을 쓴 효과나 결과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으니 ‘헛된 글쓰기’로 끝난 경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둘째는, 글이란 상대방에게 맞추어서 써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글의 내용이 옳고, 문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 글에 담긴 뜻과 뛰어난 ‘명문장’의 가치는 반으로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자고 말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천하의 명문장(天下名文)을 쓴다고 해도 실제로 그 글이 명문장인줄 알아보는 사람은 그렇게 높은 수준의 글을 쓸 정도의 능력과 품성, 인격을 갖춘 극소수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그 글의 내용이 옳은 지 그른지, 그것이 명문장인지 아닌지조차 잘 모른다는 말이지요.
그러다 보니 이런 ‘글을 읽는 상대방의 함정’에서 이 ‘시무 7조’가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황제 폐하’가 아니다
셋째는, 이 ‘시무 7조’라는 글의 형식에 관한 것입니다.
이 ‘시무 7조’는 옛날에 나라를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 신하나 선비가 임금님에게 주청을 드리는 상소문의 형식으로 작성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과거의 ‘대한제국’ 같이 황제의 국가(皇帝國)를 다스리는 황제에게 ‘어린(어리석은) 백성’이 “나를 돌아다 보아주소서”하고 단장(斷腸)의 호소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시무 7조’를 쓴 진인 조은산 씨가 이 글을 받아볼 사람을 굳이 ‘황제 폐하’라고 부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에게 보내는 ‘국민청원의 글’이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마치 대한제국의 황제 폐하로 가정하고 상소문을 올리는 형식을 빌어서 글을 쓴 것은 그다지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대한민국은 황제 폐하가 다스리는 나라(皇國)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나라(民國)입니다. 그러니 원래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5년 동안 나라의 운영을 위임받은 ‘대리인(代理人)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은 5년의 임기를 마치면 말 그대로 평범한 국민의 신분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권력자도 아닙니다. 다만 국민으로부터 국정을 운영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일종의 ‘고용인’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마치 황제 앞에 납작 엎드려 처분만 바라는 신하를 자처하고, “부디 굽어 살펴주소서” 하는 식의 ‘상소문’을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된 사람의 품위와 품격에는 맞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비록 풍자라고는 해도, 수천만 명의 국민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한 대통령을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황제 폐하’라고 자꾸 부르다 보면 대통령이 자기를 ‘진짜 황제 폐하’로 착각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를 ‘황제 폐하’로 착각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는 풍자나 농담일지라도 ‘황제 폐하’ 운운하는 일은 삼가 하는 것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마땅히 지켜야 할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저러나, 정작 이 ‘시무 7조’를 받아보아야 할 당사자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과연 이 글을 읽기나 읽었을까요? 그리고 이 글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나 했을까요?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릇을 똑바로 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을까요? ‘시무 7조’ 자체보다 이런 것들이 저는 더 궁금합니다.
/ 글 : 김중배. 한국조명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 大記者. 조명평론가.